청계천 자전거 타기

자전거도 천천히, 볼거리가 너무 많아

청계천은 여러 측면에서 서울의 작은 기적이다. 겨우 5.4km의 복개구간을 뜯어내고 공원화 시킨 현장은 서울의 새 명소가 되었고, 사업을 추진한 주역은 일약 대통령이 되었다. 삭막한 고층빌딩과 처절한 생존경쟁, 복잡한 교통환경 속에서 마치 사막처럼 메말라간 도심에 한줄기 오아시스로 재탄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과는 달리 개울 옆길이 좁고 인파로 붐벼 자전거 통행은 금지됐으나 하천 위쪽에서라도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많은 도심을 유유히 산책하는 것도 유쾌하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집과 묘터를 잡을 때 풍수지리를 신성시해서 이를 반드시 감안했다.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중국에서 최초로 도입했다는 풍수지리는 이후 국정과 백성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땅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강력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하층민들조차 풍수지리가 아니면 꼼짝을 못했으니 한 나라의 수도인 도성을 정할 때는 얼마나 엄중했겠는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은 풍수지리 문외한이 보아도 ‘좌청룡우백호’에 배산임수가 분명한 완벽한 형국을 보여준다. 서울의 사대문 안도 풍수지리에 따라 정해졌고 지형은 개성의 아류로 평가된다. 개성의 진산인 송악산(489m)은 서울의 진산인 북악산(344m)보다 훨씬 높고 화강암이 드러난 산세도 더욱 빼어나다. 서울은 북악산 뒤에 조산(祖山 , 할아버지산)으로 북한산(836m)이 우뚝하고 개성은 조금 낮지만 천마산(764m)이 우람한 기세로 주변을 압도한다. 천마산 일대의 산악지대는 매우 깊어서 조선 개국에 반대한 고려의 충신 72명이 은거한 두문동과 임꺽정 일당이 숨어살았던 청석골도 여기에 있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신하들도 개성을 천하제일의 명당으로 인정했지만 결국 고려가 망했으니 이성계는 도읍을 옮기고 싶었을 것이다. 진짜 명당이라면 나라가 망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조금 부족하지만 개성과 비슷한 서울이 수도로 채택된다. 서울이 개성보다 나은 점은 명당수(청계천)가 흘러내리는 터(사대문 안)가 조금 더 넓다는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청계천은 1394년부터 수도의 젖줄이 되어 600여년을 수도의 탁류로 흘러내렸다. 임금과 왕비의 세숫물도, 중신들의 양칫물도, 서민들의 피눈물도 이 청계천으로 흘러내렸다.


아직도 복개된 청계천
촌각을 다투고 빨리 움직여야 하는 개발시대에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하천은 도로부지로 전용될 수밖에 없다. 한강도 폭이 좁았다면 필시 복개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콘크리트 동굴속을 흐르던 청계천에 40년 만에 다시 햇살이 비춰졌다. 처음 계획에는 개울 옆에 자전거도로가 생긴다고 했으나 노폭이 좁고 보행자가 많다는 이유로 보행자 전용으로 된 것이 아쉽지만, 서울 중심지에 파란 물줄기가 그려진 모습은 신통스럽다.


그런데 청계천은 최근에 복원된 5.4km 구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청계천은 길이가 10.8km에 이른다. 복개되지 않았던 하류부분 2.4km를 더하면 여전히 3km는 어딘가 땅 속에 숨어 있고, 복원구간은 전체의 50%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청계천의 원류가 분명한 삼청공원 골짜기의 물은 어디로 갔는가. 인왕산과 남산의 물은? 이들 실뿌리처럼 가는 물줄기들은 지금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를 하수구처럼 흘러내리고 있을 것이다. 광화문이 청계천의 시발점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 와서 그 모든 물줄기를 복원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 


청계천 복원을 두고 참으로 논란이 많았다. 나는 한강수계 자전거도로가 서울 도심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나 공연한 공약(空約)이 아닐까 싶었다. 고가도로 상하를 포함해 총 16차로의 도로가 도심지에서 없어지는데, 그에 따른 극심한 교통체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공사기간 동안 주변 상가의 피해는 또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 아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복원 현장을 취재하면서 그야말로 피를 말리며 일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뭔가 일이 되겠군’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통 바로 전날에는 청계천을 둘러보다가 시험가동중인 분수에 물벼락을 맞았고, 자전거는 통행금지 시킨다는 방침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도심을 뚫고 물줄기가 아득히 흘러내리는 모습에는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도심지의 볼거리들
자전거는 청계천 바로 옆으로는 내려가지 못해도 위쪽의 도로를 달릴 수는 있다. 도로변 상가도 재정비되어 간판이 말끔해졌고 보도가 넓어져 미니벨로 같은 작은 자전거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계천은 수도가 된 이후 600년 간 온갖 풍상을 겪었고, 지금도 서울의 한가운데를 흐른다. 청계천 주변에는 오래되고 독특한 상가가 집중해 있어 서울을 대표하는 상업문화의 절정을 엿볼 수 있다.


중랑천과 합류하는 청계천 하류인 살곶이다리에서 출발할 경우, 복원구간이 시작되는 동대문구청 옆 고산자교 부근에는 청계천 복개 전인 1960년대 청계천 옆에 줄지어 있던 판자촌이 복원되어 있어 고단했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청계8가 일대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만물시장인 황학동 풍물거리가 펼쳐진다. 청계6가는 잠들지 않는 패션가로 유명한 동대문 일대다. 의류시장인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이 근처에 있고, 장난감과 문구 도매점들이 집결한 문구거리도 지척에 있다. 온갖 책들의 집산지인 헌책방 골목도 이곳 청계천 변에 있다.


청계4가 남쪽에는 특수인쇄와 포장용품 전문시장인 방산시장이, 북쪽에는 한복과 전통용품을 주로 취급하는 광장시장이 있다. 청계 2, 3가까지 공구와 조명상가가 이어지다가 청계2가부터는 세련되고 고급스런 고층빌딩들이 중심 상업지구를 형성한다. 종점인 청계광장이 가까울수록 높아지는 빌딩들이 서울의 가치를 드높이고, 마침내 청계광장에 도착하면 대한민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로가 반겨준다.


코스 가이드
청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는 살곶이다리에서 광화문까지 청계천 노천 구간을 왕복하면 15.6km의 코스가 된다. 그중 4.8km는 천변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지만 나머지 10.8km는 하천 위쪽의 보도를 이용해야 한다. 횡단보도를 많이 건너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간편한 미니벨로라면 이곳저곳 경치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출발점인 살곶이체육공원은 바로 옆에 살곶이다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살곶이다리는 길이 78m, 폭 6m 규모로 당시에는 가장 긴 다리였다. 살곶이(箭串)라는 지명은 이성계가 쏜 화살을 맞은 새가 떨어진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지만 옛날 뚝섬 일대가 군사훈련장이어서 활을 쏘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살곶이체육공원에서 청계천 방면으로 들어서면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청계천 왼쪽 길은 내부순환로 아래를 지나 그늘이 지기 때문에 햇살이 따갑지 않다면 화사하고 경치도 좋은 오른쪽 길을 권한다.


다리를 건너 예전 복개천 입구인 동대문구청 앞까지 2.4km는 길옆으로 콘크리트 벽이 길게 이어져 있으나 잘 가꿔진 꽃밭과 도심의 복원구간에 비해 한층 자연스러운 하천 경관이 시골 들판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대문구청 앞에서부터가 복원구간으로, 자전거는 더 이상 하천 옆길을 갈 수 없으므로 도로로 올라서야 한다. 그동안 청계천 분위기는 대충 느꼈으니 도로 위를 달리며 청계천을 내려다보거나 길가에 늘어선 다양한 상가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청계천 바로 옆의 보도는 길이 좁은데다 가로수까지 막고 있어서 상가 앞의 넓은 인도를 이용한다.


영등포구청에서 도로 위로 올라서면 청계9가인데, 광화문(청계1가)까지는 약 500m 간격으로 꼬박 9개의 횡단보도를 지나야 한다. 보행자와 함께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이마저도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청계천 복원구간은 세종로사거리 동아일보 앞 청계광장에서 끝난다. 이왕 여기까지 왔다면 광화문이나 종로 등 도심지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많이 가본 곳이라 해도 자동차나 보행이 아닌, 자전거로 만나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살곶이다리에서 광화문을 왕복하는 15.6km는 미니벨로를 타고 느긋하게 움직인다면 3시간은 잡아야 한다. 도중에 구경거리가 하도 많으니 시간은 한참 더 걸릴 것이다.


살곶이체육공원 가는 길
살곶이체육공원은 한양대학교 뒤쪽의 중랑천변에 있다. 내부순환로 마장 램프로 나와 한양대 뒤쪽으로 청계천변을 따라가는 사근동길을 이용하면 된다. 공원에는 유료 주차장이 있다(10분당 300원). 


챙기세요!
O 식사 : 도심 구간은 먹거리 천국이다. 황학동 시장 뒤편에 있는 왕십리 곱창골목, 청계7가에서 남쪽으로 700m 가량 가면 나오는 신당동 떡볶이 골목, 청계5가에서 남쪽으로 500m 들어간 오장동 냉면 거리, 종로의 수많은 뒷골목 맛집 등 골라 먹기에는 최적이다.  


O 휴식 : 광화문쪽의 청계광장이나 서울시청 앞의 서울광장 등에서 쉬어가 기 좋다.


O 주의 : 한강변의 자전거도로 같은 화장실은 따로 없으므로 주변 빌딩 등을 이용해야 한다. 청계천 시내구간은 보도를 달려야 하므로 주차된 차량과 보행자에 조심한다. 일반자전거보다는 휴대가 간편한 미니벨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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